본문 바로가기
Treasure Book

TOAST [The story of a boy's hunger] - Nigel Slater

by Bolegounsaram 2023. 5. 20.
반응형

 

우유 피막 [Milk Skin]

 

피막. 그 말만 들어도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쳐간다. 

피막이란 햇볕에 피부를 태우고 나서 가슴팍에서 벗겨내는 것 아닌가.

손을 베었을 때 상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아무 데나 달라붙는 것. 

뱀이 나타난 자리에 남아 있는 투명한 껍질. 피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반사적으로 방부 처리한 시체의 정강이 살갗이 벗겨진 장면을 떠올린다. 

대체 내 코코아에 그게 왜 떠 있단 말인가?

따뜻한 우유에 형성되는 얇고 쭈글쭈글한 피막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 피막을 그냥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사랑 또는 격렬한 미움의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우유 피막이 반쯤 형성된 상태가 제일 싫다. 그런 피막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아서 

실수로 들이켰다가 아랫입술에 척 걸쳐지게 마련이다. 

최악의 사태는 누군가가 우유 피막을 위저어 놓아서 작은 조각들이 혀에 달라붙고 

결국 손가락으로 꺼내야 하는 것이다. 

재빨리 움직인다며 코코아와 우유 넣은 커피에 형성된 피막이 충분히 두꺼워져 

한 덩어리를 이루는 순간에 그걸 잡아챌 수도 있다.

그러면 피막은 마치 녹아버린 주방용 랩처럼 티스푼 주위에 착 감긴다.

 

 

마시멜로 [Mashmllows]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 형이 미니밴에 나를 태워 버밍엄의 고모네 집에 데려다준 게 전부였다.

고모네 집은 깔끔하고 조화롭고 항상 조용했으며 이제 커튼을 쳐놓으니 더욱 조용했다.

고모부, 집을 찾아오는 이웃들, 옆집에 사는 의사네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발소리를 죽여

걸어 다니고 속삭임에 가까울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깡통에 든 토마토 수프, 민트 소스를 뿌린 양갈비구이, 비스토 그레이비, 껍질콩으로 이루어진 식사도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명랑한 소리로 "고맙습니다." 라든가 "네, 먹을래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내가 엄청난 무례를 

범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틀 후 영이 와서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고모는 테두리에 레이스가 달린 손수건을

입가에 댔다. 아빠는 나를 위층으로 데려가서 잠자리를 준비하라고 말하고 나갔다. 

"곧 재워주러 올라오마."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며칠 밤을 빼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서 잘자라는 키스를 해주지 않은 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다가 침대 옆 탁자에 하얀 마시멜로 두 개가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원래 나는 침대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아빠가 위층으로 올라왔을 때 나는 마시멜로가 내 거냐고 물었다.

"그럼, 네가 그걸 제일 좋아하잖니."

마시멜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가 아니었고, 아빠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학교 과제로 제출했던 작문에서 마시멜로가 키스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고 썼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연하고, 핑크색이니까. 

나는 핑크색 마시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무슨 색이든 맛은 똑같았으니까. 

다음 2년 동안 밤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두 개, 때로는 세 개의 설탕 맛이 나는 보들보들한 마시멜로가 놓여 있었다. 

내가 무엇보다 그리워했던 건 엄마의 키스였다. 

엄마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잘 자라. 우리 아가."라고 속삭여주는 것. 

호두 아이스크림도, 캐드베리 사의 플레이크도, 설탕을 뿌린 아몬드도 그 키스를 대신하진 못했다. 

마시멜로가 정말로 키스에 아주 가까운 음식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치즈 얹은 토스트 [Cheese on Toast]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음식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보다 나아진 것도 별로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치즈 얹은 토스트를 만들어주었는데 요리법이 상당히 특이했다. 

작은 팬에 버터를 녹이고 덩어리 치즈를 갈아 넣은 후 치즈가 녹을 때까지 저어주다가 따뜻한 토스트 위에 그걸 부었다.

맛은 제법 괜찮았다. 치즈를 너무 많이 익혀서 치즈 맛 풍선껌처럼 질겨졌을 때 빼고는. 

언젠가 내가 그걸로 오토바이 타이어를 고쳐도 되겠다고 말했더니 아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나는 그말을 한 걸 후회했다. 

 내가 아빠의 치즈 얹은 토스트를 좋아했던 이유는 엄마가 치즈를 썰어 그릴 밑에서 구워주던 때보다 촉촉하고

즙이 많아서였다. 엄마는 토스트에 크래커 배럴 치즈를 얹지 않았다. 

엄마는 퍼시 솔트 식품점에서 치즈를 샀는데, 솔트 아저씨가 뒤쪽 선반에서 커다랗고 기름진 치즈 덩어리를 

꺼내 썰어주기 전에 맛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기름종이에 치즈를 싸서 나에게도 맛을 보라고 건네주곤 했다. 

때로는 치즈 맛이 너무 진해서 내 입천장의 핏줄이 다 곤두섰다. 아빠는 상점에서 무언가 부탁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베이컨과 차를 살 때조차 포장되어 나온 제품을 골랐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솔트씨가 냉장고에 보관하는 커다란 돼지다리를 잘라 달라고 말하지 않고 매번 통조림 햄을 샀다. 

하지만 치즈 얹은 토스트는 아빠의 것이 더 나았다. 때때로 나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만찬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통조림 콩과 소시지 [Tinned beans and sausage]

 

수요일에는 아빠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지 않았다. 수요일은 포터 아주머니가 쉬는 날이기도 했다.

나의 점심 식사는 오븐 안에 들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 접시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내용물은 항상 강낭콩과 소시지 캐서 롤이었다. 그건 도자기 냄비 안에 강낭콩과 마늘을 얹은 소시지를 담은 요리가 아니었다. 

치폴라타 소시지 위에 강낭콩 통조림 한 통을 그대로 털어 넣고 데워 먹으라고 놓아둔 음식인데

그나마도 오븐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집에와서 그런 광경을 보면 괜히 서글퍼졌다. 

갈색 콩 더미 안에 껍질 없는 가느다란 소시지가 3개 들어있었고, 맨 위에는 보자기처럼 얇은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었다면 그것도 로버트 프레송의 사진처럼 보였으리라.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사랑도 많이 받고 혹평도 많이 받은 캐서 롤로 차린 농부의 따뜻한 점심 식사 말이다. 

그러나 나의 캐서롤은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는 왠지 그 식사가 기다려졌다. 오븐의 납처럼 무거운 문을 열면 뜨거운 공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나는 두꺼운 오븐 장갑을 끼면 잘 만져지지도 않는 작은 유리 손잡이를 잡아 접시를 꺼냈다. 

나에게 그건 훈제 대구를 구운 이후로 요리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었다. 

 어느 수요일에는 집에 왔는데 오븐이 비어있었다. 아빠가 깜빡했던 것이다. 

집에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개가 부엌 바닥에 오줌을 싸놓았다.
나는 리츠 크래커 봉지가 열려 있는 걸 발견하고 앉아서 그걸 먹었다. 

짭짤한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내가 통조림 콩과 소시지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잊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을 남겨둔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이다. 

 

 

 
Toast
-
저자
Nigel Slater
출판
HARPER PERENNIAL
출판일
2012.01.26
 
Toast
-
저자
Nigel Slater
출판
Harper Collins Paperbacks
출판일
2012.08.01

 

 

:)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단편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라서 가볍게 읽기 좋았다.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책 두권을 팔고서 책 제목에 이끌려 샀는데 마음에 든다. 

빵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그냥 식빵을 구워 아무것도 안 바르고 먹는 걸 좋아해서 끌렸겠지.

 

어린아이의 관점이라고하기에는 감정이 너무나 풍부하고 묘사가 너무나 디테일하다.

어른아이처럼 얘길하며 자기의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다. 부럽네.

그 와중에 가장 공감 간 내용은 우유 피막에 관한 이야기

따뜻하게 데워먹는 우유의 맛과 향이 주는 느낌을 좋아해서 

겨울엔 종종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데,

많이 돌려버리면 우유 막이 형성된다. 

그걸 굳이 숟가락으로 거둬낸 뒤에 먹어야 하는 게 

늘 귀찮은 일 중 하나였는데, 이 친구는 그걸 아주 싫어한다.

 

아이의 관점으로 바라본 엄마의 음식 평, 혹은 아빠의 음식 평, 좋아하는 과자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도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약간은 무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기록한 일기 같은 책.

덕분에 영화도 보고 싶어졌다. 주인공이 프레디 하이모어와 헬레나 본햄 카터의 조합이라니....

 

하나 공감가지 않는 건 내가 어릴 적에 받아본 적이 없는 굳나잇 키스

나는 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최근에서야 내가 꽤 문제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했고,

내 안에 잠재된 이 문제를 내 스스로가 인정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남자친구들에게서 받으려고 했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싶어서 안달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결론은 자식을 낳아 올바르고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새벽부터 일하러 나갔다. 나는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나에게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워렐과 함께 등교했다.

워렐의 엄마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시킨 게 틀림없었다.

어른들은 어떤 아이의 엄마가 죽으면 그 아이를 대하는 말투까지 바꾼다.

좀 모자란 아이, 또는 유리로 만든 아이를 대한 것처럼. 엄마를 잃은 아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확대경 밑에 놓고 분석한다. 사람들이 대문자로 말하는 것처럼 느낀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모든 감각이 한 단계 발달한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도 마음을 많이 쓴다. 

그해 나의 생일 파티가 없으리라는 것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열 살 생일파티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아빠는 말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