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원정미
- 출판
- 서사원
- 출판일
- 2022.11.10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
(앞부분 생략)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나는 겁도 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결정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무모한 선택이었다. 아버지의 지원에 약속했던 보답을 하지 못하는 결정이었고,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남매와 함께 밥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이 불행한 결혼 생활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어머니에게는 큰배신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오빠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다른 것은 차치하기로 했다. 어떤 이해관계나 가족들의 상황 모두를 내려놓고 나만 생각하기로, 내 행복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정착했다.
아주 완벽한 독립
결혼은 내게 부모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선사해 주었다. 사실 독립의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하지만 그 당시에는 결혼만이 나의 독립과 이민을 가능하게 해 줄 가장 합리적인 방법처럼 보였다. 미국에서의 결혼은 가족과의 어마어마한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를 보장해 주었다. 남편과 나는 그 당시 정말 별 볼 일 없는 빈털터리 청년들이었지만 결혼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저렇게 해서 언제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사나, 하는 부모님의 염려와 불안이 계속됐다. 나는 부모를 버리고 간 불효녀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짐덩이'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독립하고 몇 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애를 봐달라, 반찬을 해달라,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지 않는 나에게 오히려 고마워했다. 어머니는 그 당시 평생소원이었던 공부를 다시 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있었는데, 주변의 어머니 또래 친구들은 또다시 자식에게 매여 손주 육아며 자식 살림을 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오롯이 독립했다. 우리는 각자 완벽하게 독립함으로써 서로 다시 연결되었다.
건강한 독립은 책임과 최선으로 쟁취하는 것
독립은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독립을 경험해 봐야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분별력도, 건강한 자존감도 키울 수 없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 능력이 되고 자존감이 되기 때문이다. 진짜 어른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스스로 얼마나 독립적인가'다.
아무리 부모 자식,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각자는 다른 인격체다. 다른 인격체를 가진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너무 많다. 그 안에서 서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받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건강한 소통은 상대방을 설득해서 결국 나의 뜻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 하지 않는 것이다. 건강한 소통에는 건강한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론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자립이 되어야진정한 독립이다. 이렇게 건강한 독립을 한 사람만이 가까운 사람들의 집착이나 간섭에서 벗어나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자존감 성장의 시작은 주도적인 선택과 책임
어렸을 때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러나 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착한 딸의 삶 대신 '나를 위한'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의 뜻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 유학,결혼, 영어 공부, 미술 공부, 상담학 공부까지 모든 것이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고 의지였다. 내 나름의 선택을 할 때마다 나를 지지하거나 격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웬 미국?" , "왜 하필 그 사람과 결혼을 해?" , "지금 순수미술 해봐야 직장도 못 구해", "그 나이에 공부를 한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내 생각과 판단을 믿었고 그것을 책임지며 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든 적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냥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목표했던 것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이 선택을 하길 잘했다며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내 선택에 대한 확신과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고 나에게 열심히 훈계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내 자존감은 그렇게 성장했다.
자존감 성장의 시작점은 분명 가정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아라는 개념을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때문에 유아기에는 자신과 엄마는 하나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땐 부모가 바라보는 대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아이의 자존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집에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는아이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자존감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당연히 존중받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 주변에서 반영해 준 자신의 모습이 내적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너는 나쁜 아이야. 별 볼 일 없는 놈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 그런 자아상이 생기고, "너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 자신이 그런 줄 알고 자란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과 존중을 통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아이가 스스로의 성취와 노력으로 그것을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사춘기 이후의 자존감은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부단한 노력과 책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진짜 자존감의 조건: 자유와 책임
건강한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존감 성장의 핵심은 자기 효능감이다. 이는 내가 선택한 일이나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시 확신이고 신뢰다. 공부 빼고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육아로는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키워줄 수 없다. 공부 말고는 해 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아이들의 자기 효능감을 키워주려면 경험으로 쌓은 성취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험의 시작은'스스로 하는 선택'이다.
아이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연습을 하게 해야 주도적이고 자신감 있는 어른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모들은 보면 대학에 가기 전까지 아이의 모든 것을 부모의 통제 안에 두려고 한다. 아이는 부모의 정보력과 지시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움직인다. 그러니 아이가 선택할 것도, 책임질 일도 없다. 그러다 갑자기 대학을 가면 아이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고 '책임'을 강요한다. 그러나 자유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아이는 갑작스럽게 허용된 자유는 두려움과 공포로 느껴질 뿐이다. (중략)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면 자유와 책임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이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것들이 쌓여 자기 효능감이 발달하고 자기 주도성과 열정이 생기는 것이다. 열정으로 원하는 일을 성취하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자존감이 튼튼해진다. 많은 사람이 주어진일을 무척 성실히 해내면서도 자존감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실패를 피하기 위해 하는 선택은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인생의 방향과 삶에서의 선택권이 본인에게 있음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며 결국 끝까지 해낸다. 비록 그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고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선택한 일을 책임진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더 큰 도전이 가능해진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사회적 인정이 아닌 스스로 해내는 성취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공과 실패는 경험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일까? 아니면 자존감일까?
자존심과 자존감의 가장 큰 차이는 '개인의 판단과 기준 그리고 목표가 어디에 있느냐'다.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다. 따라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의 기분은 대부분 외부의 평가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있다. 그러니 자신의 장점만을 부각해서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보다는 본인의 내적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모두 비교 불가능한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모든 일을 자신의 기준과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은다. 타인의 평가보다 내적 성공과 성취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에 내적 안정감과 자신감이 있다. 이런 여유는 타인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이들은 타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그러나 자존심만 높은 사람은 습관적으로 타인과 비교를 한다. 나의 만족보다 타인의 평판과 찬사가 먼저다. 그래서 내가 남
보다 뛰어나야만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면에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아, 인정받고 싶은 자아만 있는 경우가 많다. 자랑하고 싶은 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가꾸느라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에 정작 마음에 충만함이나 안정감은 없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마음의 여유나 포용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자칫 보면 남들에게 당당하고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자존심만 높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높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한 자존심은 열등감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존중감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포용력도 높다. 이런 내면의 성장과 성숙은 불필요한 자존심을 버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부터다.
다시, 사랑을 배우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답을 찾아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딸을 위해서도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절대로 딸에게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나에게 관계 공부를 하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결혼과 인간관계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없으니 책으로라도 배워야 했다. 책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경험했던 모든 인간관계는 미성숙한 것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배웠다. 진짜 사랑은 의지고 선택이며 노력이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닫고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나자 남편의 생각과 행동이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사랑의 언어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로 남편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은 남편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다. 상대가 내 마음 같이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이해하고 배려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추어 갔다.
사랑은 마주 보면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깊은 사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고 용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은 세상을 이길 힘을 준다. 결혼한 배우자와의 갈등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린 시절엔 서로에게 느끼는 뜨거운 열정이나 끌림만이 사랑이라고 착각했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을 유지하고 지켜내려는 노력과 헌신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충족되지 못하거나 성장하지 못한 심리적 자아가 있다. 이른 내면아이라고 한다. 부모의 올바르지 못한 양육 태도나 환경으로 인한 소외, 단절, 고립을 겪으며 충분히 자라지 못한 심리적 자아, 내 며느리 인격이다. 어린 시절 양육자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거나 트라우마가 있지 않더라도 충분한 애정이나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 내면아이는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내면아이가 잘 성장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생기거나 공격을 받았을 때 이성적 판단은 마비되고 연약한 자아를 보호하려는 욕구만 커지게 된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정서적 결핍을 경험한 부모일수록 내면 아이의 모습이 두드려져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받아보지 못한 정서적 충족감을 자녀에게 베풀지 못할뿐더러 자신의 연약한 자아를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까운 사이의 관계가 더 어렵다.
결혼 전부터 절대로 내 부모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나는 칭찬에 인색했고 꽤 무심했다. 그렇게 싫어했던 부모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그들과 같은 눈빛으로 내 아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부모에게 받았던 인풋이 자연스럽게 아이게게 아웃풋 되는 것에 절망했다. 육아서를 아무리 읽어도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마음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마음고생은 당연했다. 사랑은 받아보고 경험한 자만 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절절히 느꼈다. 부모의 사랑을 느껴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냐며 교회에서 기도하며 매번 울부짖었다. 절망스러웠다. 수유 때문에 2시간마다 일어나야 하는 것보다, 혼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아이를 안고 볼일을 보는 것보다, 아파서 우는 아이를 안고 함께 밤을 새우는 것보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내 손을 내리는 게 더 힘들었다. 아이를 가르칠 때마다 "너 바보야? 왜 이런 것도 못해? 넌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 얼굴을 붉히며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이들의 쓸데없는 재잘거림이나 징징거림을 인내로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나와 기질이 다른 아이는 달라서 당황스러웠고, 날 닮은 아이는 나의 단점까지 보여 답답하고 한심했다. 정말 누구 하나도 내 맘같이 되지 않았다.
내 상태와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감정을 다 쏟아낸 다음 또 아이를 붙잡고 눈물로 사과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군가 아동학대의 대물림은 5중 추돌사고 같다는 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사고로 뒤에서 갑자기 밀어붙인 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의 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 같다고, 정말 그랬다. 나는 아이들을 들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 잠자던 분노와 내재된 부모의 모습들이 불같이 튀어나와 아이들을 들이받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참아야 했다. 이것이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정서적 금수저와 흙수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으니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부모가 공부도 못하는 막내아들이었던 본인을 마냥 예뻐해 주었다는 장항준 감독의 이야기나 팔삭둥이로 태어나 까다롭기 그지없던 자신을 부모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했다는 오은영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한쪽 구석이 저릿하며 부럽다. 이들은 긍정적 사고, 자기 주도성, 감정 조절 능력, 사회성, 건강한 자존감 등을 두루 갖춘 정서적 금수저인 셈이다.
요즘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누고 부모가 부유하지 않은 20-30대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력에서만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 코칭의 대가인 최성애, 조벽 박사는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에서 인간관계에서도 흙수저와 금수저가 있다고 했다. 부모에게 안정적 애착, 돌봄 그리고 적당한 훈육과 바른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정서적 흙수저들의 70-75퍼센트는 그 결핍을 자연스럽게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결핍만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부모의 태도는 자녀에게 무조건 영향을 준다. 정서적 금수저들은 나처럼 공부하고 애쓰며 힘들이지 않아도 밥을 먹고 옷을 입듯이 자연스럽게 건강한 육아를 한다. 자신의 부모에게 보고 배운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서적 금수적인 사람을 볼 때면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꼈다. 결핍이 많은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고 건강하게 자란 사람에게 태어났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덜 혼나고, 덜 주눅 들고, 덜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면아이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어렸을 적 상처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나의 내면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처받은 나를 대면하고 애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그때는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부모님도 못 배워서 그런 것이다', '이 정도로 자란 것도 다 부모님 덕이다' 라며 부모를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넘기려 한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상처는 반드시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리 발목을 잡는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은 터져 나와 흘러가야 한다. 그 당시 상처받은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와야 회복이 시작된다. 이 해소 과정은 그 당시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소환해야 하기에 두렵고 아프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저 덮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로서 당연히 가지고 누려야 했던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애도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면 이제 해결되지 않았던 나의 욕구를 채워야 한다. 인간은 각자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누군가는 명예나 부, 누군가는 인정이나 자기실현일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한이 된다. 한이 된 것은 후에 미련과 후회 또는 집착이 된다. 해보고 싶었던 것, 원하고 바랐던 것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것이 우리 내면의 성장에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마음을 숨기기 때문에 내면아이가 성장하지 못한다. 이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다.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변화가 있고 성장이 있다. 이렇게 내면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으로 가는 길이다.
화해보다 나의 회복이 먼저다
부모와 자식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관계다. 하지만 그 수준이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고 해서 너무 안달 내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결국 인간관계의 한 형태일 뿐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언제나 쌍방향이고 한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대신 그 관계에 얽매여 다른 소중한 관계를 잃어버리거나 내 삶이 침몰하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내 마음은 내가 책임지고 관리하기에 달려있고 그것이 진정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오해
(앞부분 생략)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훨씬 더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반응인 것이다. 그래서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우리는 그 감정으로 인해 때로 '나쁜 행동'과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솔직히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은 자녀도 키우다 보면 미워질 때가 있고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옳다. 그리고 감정은 영원하지도 않다. 평생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사는 사람도 없고 평생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감정은 늘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러니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때론 형제가 미울 수 있고 시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심지어 부모가 미워지고 가끔 귀찮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직장에 가기 싫고 학교가 지겹고 공부가 하기 싫은 그 모든 감정은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그런 마음이 들어도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감정을 억누르거나 애써 부정할 필요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오히려 좋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아주 무딘 사람이 된다. 삶의 작고 소소한 희로애락을 놓친다면 삶의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내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고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할 수 없다. 즉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중략)
'그래, 그땐 그랬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이렇게 내 감정을 흘려보내자 예전처럼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일이 거의 줄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무거운 감정들이 마음에 쌓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평안해졌다.
자기 사랑의 시작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려면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는 최상의 단계는 자신답게 살아가는 자기실현의 단계다. 게슈탈트 심리학 용어에도 '참자아(true-self)'가 있다. 우리 인간은 각자 다른 모습, 다른 재능,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특별함이 있다는 것이다. 타고난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최대한으로 성장하고 발전시켜서 자신의 참자아가 발현될 때 우리는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자아가 억압받고, 왜곡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아프고 병이 든다고 했다.
참자아가 성장하여 발현될 수 있도록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자기 사랑'이고 '자아실현'이다. 자기 사랑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지,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인지, 남을 돕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제대로 성장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중략)
자기 이해와 자기 존중을 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카이스트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김대수 교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게 될 때뿐이라고 했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이 타인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이 사랑이다. 이런 내적 성장과 성숙이 정신건강과 삶이 질을 좌우한다.
:)
요즘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쓴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정서가 불안정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 생각할 때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들에 해답을 찾고 싶었다.
결정내리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나 자신과의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일화가 많았고, 나 또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정서적 흙수저라는 사실에 슬프기도 했고, 사춘기를 너무 수수하게 보낸 내가 후회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엄마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온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또 슬프고.......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머리가 아프기도하고
책을 끝까지 읽어가면서 복합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토닥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자존감을 차근차근 높여가고 싶다.
지금은 책 읽기 , 스트레칭, 산책하기 정도이지만
욕심을 내자면 명상, 생각 줄이기, 생각 바꾸기가 가능해진다면 지금보다는 정서불안이 해결되어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다 자란 성인이나 혹은 노인들을 바라보면
그 안에 작은 아이가 들어있겠지? 그리고 완벽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세상에 흔하지 않을 테고
저마다의 내면의 상처와 극복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어른이 되는 거겠지.라는
프레임이 새로 생겼다. 측은지심인가.
[내 마음 돌아보기]라고 해서 챕터마다 다양한 질문을 제시한다.
내 마음과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은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들이라. 시간을 들여서 답을 써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나 자신과의 화해와 대화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특히나
결혼을 하게되면 상대방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에 따라 좋은 결말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또르르......
지금 가족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가족에게서 받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거나,
결혼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꼭 문제가 없더라도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는 책
:)
또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을 옮겨놓고보니 너무 양이 또 방대해졌다.
문제될 시에는 수정조치하겠습니다! (_ _)
'Treasure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추천] 2인조(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 이석원 (0) | 2023.06.17 |
---|---|
책추천] 2인조(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 이석원 (0) | 2023.06.17 |
키네마의 신] 영화 목록 정리 - 하라다 마하 (2) | 2023.05.23 |
책추천] 키네마의 신 - 하라다 마하 (4) | 2023.05.22 |
책추천] 일 분만 더 - 하라다 마하 (4) | 2023.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