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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asure Book

책추천] 2인조(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 이석원

by Bolegounsaram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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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의 산문집을 통해 삶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해온 작가 이석원이 새 산문집『2인조』. 이 책은 일상 속 스트레스에 지쳐 어느 날 몸도 마음도 무너져버린 한 사람이 그런 자신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보낸 일 년간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언제나 타인과 세상의 시선만 좇으며 살았지 스스로에게는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깨닫고 늦게나마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25년만에 마음의 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다녀 온 저자는 자신을 구원할 것은 의사와 약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보고 고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의 반환을 넘긴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남은 생을 도모하기 위해 쓰는, 한 해 동안의 기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
이석원
출판
출판일
2020.12.02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그래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평생을 싸우고 대화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일 수 없으며 그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미움받는 연습 2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 어떤 순간에도 '나'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비록 그게 가족이나 다른 어떤 중요한 존재라 할지라도.
 
저는 그렇게 다시 건강해지고 남은 생을 잘 살기 위한 내 삶의 매뉴얼의 첫 장을 써 내려갔어요.
 
그게 내 치료이자 회복의 시작이었죠. -41p
 

 
 
 

13일
 
스물두 해 전 우리나라에 아이엠에프 사태가 닥쳤을 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직접 차린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창간 두 달 만에 나라가 망하는 벼락이 떨어지자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무실에는 이런저런 일들을 돕던 형과 나만 둘이 남게 되었다. 그때 우리 두 사람은 일도 없으면서 매일 출근을 했는데, 형은 이럴 때일수록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며 인적이 없어 더러워질 일도 없는 사무실을 종일 쓸고 닦으며 하루를 보내곤 하셨다. 주인도 없는 책상에 그날의 신문들을 가지런히 올려놓으면서 말이다. 그때, 마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미담 섞인 성공사례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형을 보면서, 나는 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었는데.
 
 언제부턴가 요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뭐든 하기가 싫어질 때면 꼭 주문처럼 이십 년 전 그때 형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납덩이같은 귀찮음과 무기력함을 가까스로 물리치며 오늘, 지금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청소, 설거지, 고무장갑 라지 사이즈로 사 오기 등등.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노트에 적어놓고는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하다 보면 희한하게도 또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적어도 내가 밥만 축내는 밥벌레는 아니라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그렇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것들을 해나가며 또 그 다음 일을 하다보면 결국엔 가장 힘든 일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50p
 
 
 
 
 

22일
 
 오늘도 쓴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지에 대해. 그래서 이제 영원히 다시는 책을 낼 수도 없고 굶어 죽게 된 게 아니라면 난 어째서 이렇게까지 결과에 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어쨌든 상태가 이렇게 안 좋아져 버렸으니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또 상황을 극복하고 체력을 회복해서 다음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책에 들어갈 원고는 여전히 전혀 쓸 수 없지만 이런 식의 자발적인 텍스트는 거의 항상 손에서 놓지 않고 생산해가고 있다. 이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다. 여전히 쓸 수 있다는 것. 물론 상태가 정말 안 좋은 날엔 그런 단순한 기록이나 짧은 일기마저도 쓸 수 없긴 하지만 그럴 땐 다음날을 기약한다. 내일이면 쓸 수 있겠지. 그게 안되면 또 다음날 하면 된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말자. 아무것도. 
 
너(나)는 지금 환자니까. - 55p
 
 
 
 
 

나를 살리기 위한 지침들 
 
1.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나를 회복시켜 갔다. 건강뿐만 아니라 돈 문제, 일, 인간관계, 온갖 생활 습관, 취미 등 삶의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돌아보고 정리하고자 했다. 건강은 그 모든 것과 관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정리를 해가다 보니 나름 지침도 하나둘씩 생기게 되었는데 그중 첫째가 '나를 탓하지 않기'였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일들에 내 탓을 하며 살아왔고, 어쩌면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탓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설령 뭘 잘못했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 격려하고, 손톱만 한 일이라도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칭찬해 주려 애쓰면서 더는 어떤 자책감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태도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 태도 때문에 살 수도 있을 터. 
 
 계속해서 나를 살리기 위한 두 번째 지침은 '미루지 않기.' 귀찮음과 (필사적으로) 싸워 이기기이다. 
 
나는 안 그래도 게으른 기질에다 마음의 병까지 더해져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면 손가락하나 까딱하기조차 싫어서 미칠 것 같은 귀찮음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 난 매일 아침 너는 벌레가 아니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가까스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도 조금만 긴장을 풀면 금세 다시 무기력해져 버리곤 했기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날의 할 일을 일일이 노트에 적고선 하나씩 지워가며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했다. 길 건너 구멍가게까지 걸어가서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한 묶음 사 오기. 진공청소기의 먼지통 비우기....... 남들이 볼 땐 작은 일일지 몰라도 그때의 내겐 하나하나 하기가 태산 같은 일들이었다. 
나는 나중에서야 이 정도로까지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된다는 건 병 때문이라는 심중이 깊어졌지만, 원인이 뭐든 미루기는 삶에 현실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매우 안 좋은 습관이다. 당장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그래서 하지 않고 미루면) 우선 집 안이 어질러지는데,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집 안에서 나를 살리는 일을 도모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무엇보다, 내 많은 문제들이 이토록 반복되는 이유도 해결하기를 무한히 미루는 내 게으름 때문일 텐데, 그걸 바꾸지 않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길 바랄 수 있을까. 
 
 뭐든 애를 썼으면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그것이 살기 위한 나의 세 번째 지침이었다. 가능한 자주 나에게 선물을 해주기. 뭘 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 주기. 
 
 처음에는 어떤 하루를 보냈건 그날 하루를 죽지 않고 버틴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믿었다. 해철이 형 말씀마따나 우리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제 할 일은 다 한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면서 빵 한쪽에 불과하던 선물의 양이 늘어난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조금 숨 쉴 틈이 생기자 내가 곧바로 또 일을 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60P
 
 
 
 
 

그래서
 
1. 
 그 밖에도 이 인정과 평가의 영역은 그 중요도가 너무도 큰 만큼 하나만 더 살펴보면,
 
* 부정적인 평가에 가산점을 주는 우를 범하지 말 것.
 
 사람은 본래 부정적인 것에 훨씬 더 크게 반응을 하게끔 머릿속이 세팅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공히 한 표씩이라는 점을 자주 잊곤 한다. 나는 이 점이 정말 신기할 정도인데, 가령 어떤 신제품이 나왔다고 치자. 자동차도 좋고 아이티 관련 기기도 좋겠다. 기다렸던 소비자들은 제품의 디자인과 성능 등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점수를 주기 마련이다. 그럴 때 그 제품이 전체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라는 게 희한하다고 할까. 왜냐하면 만약 그 제품에 만족하는 사람이 열 명인데 한두 명이라도 부정적인 평을 하면 그럴 때 그 제품을 '호불호가 갈린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보통 긍정과 부정의 비율이 5:5 거나 6:4 정도로 대등할 때를 말하는 거지 8:2나 9:1을 가지고 뭔가가 갈린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럴 땐 차라리 압도적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곧잘 그렇게 인식을 하게 되는 걸까. 그만큼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의견이라는 게 다른 긍정적인 의견들을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작년 연말. 나는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던 때로 돌아가 이 매뉴얼을 적용했더라면, 그래서 조금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상황들이 다른 모든 긍정적인 요소들을 장아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더라면, 상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난 그때도 이미 이 매뉴얼들을 적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출간 후 책의 판매 성적이 시원치 않을 때에도, 나는 십 년 전 반응이 늦게 왔던 첫 책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를 다독였다. 미리부터 실망하지 말자고, 구 배 구십구 명의 지지는 잊은 채 한두 명의 부정적인 반응에 휘둘리는 우도 범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실천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고 할까. 
 
 어째서 그간의 경험들이 반면교사가 되지 못했을까. 물론 매뉴얼이라는 게 만능은 아니다. 어떤 일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그럴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간편할까. 그렇지만 이 평가와 인정의 문제만큼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살면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고민하던 중, 나는 어떤 유명한 작가의 나로서는 나름 충격적인 인터뷰를 보게 된다. 
 
2.  
 그는 한 독자가 무려 십오 년 전 남긴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타인의 부정적인 메시지가 자신을 지배할 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반응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경력이 오래된 중견 작가였고 지금은 스타가 되었으며 필치와 심지 모두 모두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굳건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조차 그토록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반응인 것을. 어째서 나는 그걸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려들고내 의지로 극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째서 나는 그 모든 것에 의연하지 못했던 날 비난했을까. 또 한번 나는, 내가 못나고 약한 탓이라며 내게로 원인을 돌린 거다. 
 
 나는 남의 살아온 이야기를 접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나와 비슷한 허물이 있고, 때로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작가는 큰 성공을 거둔 지금도 실패란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그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실패 앞의 내 많은 두려움과 나약함 역시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걸, 그것은 결콘 의지와 노력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여 매뉴얼은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것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 나는 그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난 즉시 그 많은 내 매뉴얼의 인정과 평가 항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언젠가 또 새 작품을 발표했을 때, 성적이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이 와도 실망을 하든 무너지든 나를 탓하고 비난하는 일만은 하지 말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다 했으니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내게 더 이상의 책임을 지우려 하지는 말자고.'-152p
 
 
 
 
 

분산
 
 그러므로 뭐든 좋으니 다른 일을 하나 더 마련해 두는 것은 나 같은 창작자나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회사원에게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언제든, 세상이 나를 파이어하기 전에 다른 보험을 들어놔야 한다. 항상, 패를 쥐는 쪽은 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야 덜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의 멘탈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남보다 덜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할 테니까.
 
 잊지 말자. 패는 항상 내가 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는, 여러 주머니(일)에서 나온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그렇다. -176P
 
 
 
 
 

 
자발성
 
 자발성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거.
 
 계약 때문에 먹고살아야 하니까 쓰는 글은 하기 싫은 숙제 같아 죽겠는데, 개발새발이라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하루 몇 개든 쓸 수 있지. 
 
 봉준호 감독은 무려 열두 살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후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계속해서 그 일을 좋아했다고 해. 나는 그게 그 사람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것보다 더 부러워. 평생의 자발성을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게 말야. <옥자>를 만들고 번아웃 판정을 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을 때에도 그는 어서 <기생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곧바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잖아. 바로 그 원동력이 되어준 자발성. 누가 시키면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한 어떻게든 하게 되는, 그 힘의 원천. 하고 싶다는 마음.
 
 반면 나는 열두 살은커녕 오십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뭐 어때.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는 거잖아. 난 비록 아직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삶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되길 바라는 이 마음이 도무지 식지를 않는다는 게 좋아. 스스로 조금 대견한 기분이랄까.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해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는 게 말야.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고민과 생각들은 결국엔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행복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걸까.
 
 나는 항상 그걸 생각해. 
 
 행복. -185P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달라서 많은 돈과 권력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탕 하나에 함빡 웃음을 짓는 이도 있을 것이다. 행복은 이처럼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며 나이와 성별, 세대별로도 다른 모습을 띤다.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감사함과 안도감이 아닐는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는 대가로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
 
 행복이 이처럼 주관적이라 저마다 다른 모습을 띤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하나 찾는다면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잘 안되면 스스로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 만약 행복이란 게 자기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보내게 된다면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191P
 
 
 또 나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을 때 행복을 느낀다. 내게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것과 얼추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기 때문일까. 아마 아이들과 달리 많은 어른들이 이 점에 공감할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그것은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는 급행열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도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만큼은 살고 싶기 때문에 열심히 그 일을 한다. 얘가 뜨면 얘를 부러워하고 저 사람이 잘되면 또 그렇게 속이 아파하면서.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비교가 되는 처지에 놓이는 건 늘 나 한 사람인데 비교의 대상이 되는 건 온 세상 잘났다는 사람들은 다 해당이 되니, '나'는 열등한 존재에서 벗어날 날이 없는 것이다.-195P

 
 
 

우측통행

내가 걷는 집 앞 산책로에는 100미터 간격으로 사람 몸만큼이나 커다랗게 우.측.통.행.이라는 네 글자가 하얀색 페인트로 바닥에 프린팅 되어 있다. 시력이 어지간히 안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겁나 크게 말이다. 워낙에 제도에 순응적인 편인 나는 처음 그 문구를 보았을 때부터 지금껏 단 한 번 예외 없이 오른쪽에 붙어서 걷지 않은 적이 없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서로가 피해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크고 선명하게 적혀 있는 문구를 무시한 채 굳이 내 쪽으로 돌진하듯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을 이리 자주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보통 한 시간쯤 걷다 보면 마주 오는 세 명 중에 거진 한두 명은 그렇다고 봐야 하는데, 나는 그들과 만나는 일이 조금 힘들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 
 
 사실 이것은 규칙의 문제라기보다는 이해의 문제에 더 가깝다. 예컨대 비단 산책길이 아니더라도 불 꺼진 극장에서 밝게 빛나는 휴대폰을 꺼내드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럴 때 나는 불빛 그 자체보다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서의 얘기지만 이듬해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를 맞이했을 때 내 모습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보시라. 무슨 감별사도 아니면서 거리에서 누가 마스크를 쓰고 쓰지 않았는지를 살피기 위해 눈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역시 남들이 그런 행위 자체보다 저들은 어째서 이 위험한 시기에 세상이 정해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인지, 왜 남들에게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타인의 감염 위험성을 높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일이 내겐 더 어려웠다.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 마당에서 무슨 공사가 벌어져도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유는 납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 측에서 사전에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며 언제까지 할 건지 주민들에게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주니까. 납득할 수 있으면 스트레스는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내게 소음이라는 물리적 차원이 아닌 이해라는 정신적 차원의 문제에 더 가깝다는 것. -266P
 

 
 
 
 어른 2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홀로 스스로의 삶을 문제없이 꾸려갈 수 있어야 했다. 남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신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역시 누가 옆에 있고 없고 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든 사람은 결국엔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을뿐더러, 그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의 삶의 만족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보다 더욱 높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지만 나는 그 일에 좀 더 일찍 담백해질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를 연애 감정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내가 젊어 한 그 모든 일들 말이다. -309P
 
 
 
 
 
 
홀로서기
 
 그리하여, 타고난 외로움을 스스로는 결코 떨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나는 언제부턴가 짝 없이 홀로 지내도 그럭저럭 나만의 시간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나 확실한 건 바라는 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어쩜 너무 당연한 얘기인 게 사람이 연애가 하고 싶으면 상대를 찾고, 자신을 꾸미는 등 그에 관한 노력을 하게 되듯이, 혼자서도 잘 살고 싶다 고민하고 애를 쓰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에 부합하는 성취와 변화들이 따를 수밖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주아주 중요한 포인트.
 
 바라는 게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바라는 게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314P
 
 
 
 
 
구분
 
 홀로 잘 지낸다는 건 단순히 짝이 있고 없고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겉치레와 낭비를 걷어내고 꼭 필요한 사람들과 만 관계 맺으면 살아간다는 뜻도 된다. 그게 가능하려면 나 같은 사람은 우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친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일이 주저되거나 혼자 다니는 일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고 할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계속 나와 대화하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렇지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내게 물었다. 주위에 사람이 적다는 게 과연 부끄러워할 일인지. 인생에서 그런 게 중요한지. 여전히 '너'는 집안 대소사에 너의 하객으로 올 사람이 몇이고 그들의 면면은 어떤지와 같은 문제들이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부끄럽지만 난 얼마 전까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평생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인데, 모르겠다. 적어도 난 그런 걸 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데 신경 쓰는 내가 싫었다.(마치 외로움을 타면서도 그런 내가 싫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런 나와 계속 갈등했던 것 같다. 난 달라지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설득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물었다. 너 정말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그런 게 신경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의 보는 눈이라는 게 정말 너한텐 그렇게까지 중요해?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을 하든 늘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내가 아닌 남이 보기에 어떨까 하는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그런 생각들이 삶 전반을 지배해 왔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남의 눈에 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활을 평생 해왔으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의 영역이고, 내 사적 시간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일과 내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삶에 있어서 '구분'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나 개인의 일에서까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버릇을 없애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
 
 한마디로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 
 
 그 역시 내가 고대하던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 319P
 
 
 
 
 
 
자유
 
 그랬던 내가, 세상에서 별로 잘 나가지 않아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변변한 곳에서 화환 하나 내 앞으로 오지 않아도, 내 친구 지인들 떼거지로 몰려오지 않아도, 뭐 어쩌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더 이상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아 설령 사람이 적게 와도 뭐 그럼 어때, 그냥 형편대로 사는 거지 뭐 하며 허무할 정도로 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 느꼈던 그 바다와도 같은 자유를, 그 자유로운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편안함은 어디에서 올까.
인생의 궁극의 편암함은.
 
 나는 그게 솔직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부터.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322P
 
 
 
 
 
여름의 일
 
사소한 것이라도 나로 하여금 주눅 드는 상황을 자꾸 경험하게 하지 않기. 대신 작고 별것 아닌 것이라도 좋으니 이기는 경험, 인정받는 경험,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경험 같은 것들을 자꾸만 하게 해 주기. 그뿐 아니다. 좋은 곳에 날 데려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감상케 하고 책과 신문을 펼쳐 세상과 타인에 대해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면 그 모든 순간들은 나와 내 영혼을 살찌우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부정적인 기억과 상처들은 점점 쪼그라든다. 바로 이게 나의 내면을 살찌우고 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그게 바로 상처의 보호막이었다는 걸 그동안엔 왜 몰랐을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게 다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이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346P 
 
 
 

 
 
:)
알쓸인잡에서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걸 봤는데,
심리학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그것도 긍정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근데 알쓸인잡에서는 자아는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선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나의 생각의 범주 밖이었다. 
뭐 모든 회차가 그랬지만 내가 평소 아니 평생을 하지 않았을 질문과 생각들로 넘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게 책 읽는 것만큼 재밌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요즘 이 나이 먹어서도 이렇게 흔들리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진짜 우울함이 바닥을 칠 때는 내가 반찬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라는 물음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그러면서도 숟가락을 놓지는 않았다)
책에 밥벌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공감이 가면서도 맘이 저릿했었다.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라며 위안이 되었다) 
책을 통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고 이걸 극복하려는 내가 있으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를 미워할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고 내 자신에게 더 솔직해져야 한다는 걸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응원하고 믿음을 주는 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되는데, 
"한마디로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
해가 지날 때마다 이런 구분이 더 명확해지는 거겠지.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남의 행복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내 삶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듯이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장착하자. 
 
 
총 361페이지. 꽤 두꺼운 책이지만 거의 3일 만에 읽어 내려간 것 같다. 
고장 난 나를 고쳐 쓰고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 알려주는 책.
삶의 대한 매뉴얼이 필요할 때 꺼내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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